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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억 의 틈
사랑만리
2007. 7. 13. 12:48
양평 양수리에서 덕소 넘어 가는 길목에'시우리'라는 동네어귀에
알아 주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어느 한 날 그 약수터에 약수물을 길러 가는길에
근처에 있던 주말농장 텃밭 모퉁이에 피어 있던 꽃을 찍어 왔더랍니다.
제 기억으로는 여느날 보다 끈적 끈적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후텁지근한 날 이었던 것 말고는 다른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몇 년 전 나는
기억을 송두리 채 비워 내는 일들에
골몰 했던 나날들이 있었답니다.
그 기억과 함께 주인아저씨가 몇 번이나 일러주던
화초의 이름을 까마득히 비워 내고야 말았습니다.
'추억은 마음의 보물창고'라고
작금에는 섣부르게 지워버린 지난 기억들을
내가 지닌 기억소자에 다시금 채워 넣기 위해
버벅대고 있습니다.
훗날
내 나이가 더 들어서 삶을 정리할 싯점이 왔을 때
더 이상 꺼낼 추억꺼리가 바닥나
열린 동공으로 멀쩡한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 보게 된다면
회색빛 어둠에 갖혀 끝도 없는 허망의 늪을 감지하게 되겠지요.
나는 간혹 간혹
예전 예전에 찍어 놨던 사진들을 보면서
오금이 저려오던 환희의 순간을 되살려 내는 데
촌각의 시간들을 할애하곤 합니다.
날씨에 따라 카메라의 ISO를 조정하고,
원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조리개를 조절하고,
땅바닥에 엎디어 풀잎, 꽃잎에 눈을 맞춰 구도를 잡고,
처녀 옷고름 벗기듯 조심조심 숨을 멈춘 채
셧터를 터트리는 순간
싸~하게 오금이 저려 오던 순간 순간들...
남자는 소싯적에만 몽정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 지구 상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랑들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 행해지는 사랑들마다
제각각 빛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고, 소리도 다르겠지요.
대지에 돋아 난 풀들도 제각각 다른 모습, 다른 빛깔들 일테구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라도
그저 그렇게 아무 까닭없이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라도 없다고 하더군요.
사랑도 그러하겠지요.
추억도 그러하겠지요.
하지만,
별로 효용가치가 없는 꽃이름은 잊어도 되겠지요?
그 안에 깃든 나만의 추억들만 고스란히 간직하고
문득 문득 꺼내서 음미하면 그만이겠지요?
단지 지금은
추억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사랑이 어떻다는 것 보다
꽃이름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싶을 뿐입니다.
때로는 하찮을 것 같은 것들에게도 인생을 걸듯이 말입니다...
순간 떠 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습니다.
꽃이름과 함께 옛 기억들이 불쑥 떠 오르면 어쩌지요?
밤 하늘에 촘촘히 떠 있는 별들마냥 많고 많은 기억들이
온 기억속을 헤집어 들면
그땐 그땐
어찌해야만 할까요......
황량한 모래바람이 휩쓸고 지나 간 자리에는
풀들도 꽃들도 죄다 모래속에 파 뭍히고 말 것 같은 앳된 기우에
내 가슴 한 켠이 시려오면
그때는 무엇으로 덜어내야 할까요.........
* 20070713 / By_Ad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