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괜찮은 삶 ............
경기도 소도시 휑하니 뚫린 허허벌판.
뭇사람들이 보면 한적한 시골동네를 연상하게 하는 그 곳에
한적한 대지를 밀치고 우뚝 쏫아있는 높직한 하우스 네 동.
거기 여든을 바라보는 머리 히끗한 아름다운 노인이
멀쩡한 허우대를 드러 내놓고 땅이 다칠세라 하늘이 무너질세라
조심조심 촛불기도를 드리고 있으니....
'이 촛불은 나의 마음과 육신을 촛불과 같이 불태워서(중략)
이 촛불이 꺼지면, 나의 영혼은 죽어서 썩은 것이라(중략)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기를
기도 드리옵니다..'
한 켠에는 '무료진료소'라는 휘장을 두르고
샛노란 병아리를 닮은 버스가 육중한 몸을 쉬고 있어
어느 한 곳에 눈길을 머금어도 노인의 지극한 정성이 곳곳에
베어있음을 눈치 빠르지 않은 사람도 일순 알아차릴 수 있으니..
해를 거듭거듭 넘기고 넘겨 10여 년의 세월을 섬섬옥수 따스한 햅쌀로
밥을 지어 올렸으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하길
'머리가 돌아 버린 노인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노인네'
별의 별 시기함을 한 몸으로 버텨내고도 부족하여
또 다시 대전 역으로 출발하기 위하여 거사를 꾸미고 있으니.
그 노인의 머릿속에는 온통
퍼주는 기쁨에 가득 차 있나보다.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쉬어가고도 싶을 텐데....
오늘이 그 노인에게 하나뿐인 아들놈 장가가는 날이래
가장 가까운 가족까지도 이해를 못하여
한데로 내몰리듯 쫓겨 동짓달 차가운 나날들을 버스 안에서
병들어버린 심장을 부여안고 늙은 육신을 쉬시더니
아들녀석의 결혼을 빌미로 작디작은 짐을 트럭에 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시며 껄껄껄 웃으시던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높직한 하우스 네 동을 훈훈하게 하고...
오늘 밤 그 노인의 잠자리는 어느 때보다 편안한 잠자리가 되리라
'내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어.' 하시면서
많은 세월들을 조용조용히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고 있으니
그 노인의 이름은
유수봉!!
돈 한푼 안 되는 허우대만 멀쩡한
< 밥 퍼주는 할아버지 유수봉 >
그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삶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리 카페촌 어귀와
경기도 광주시 공설운동장 어귀와
경기도 용인시 공지천과
경기도 안성시 중앙시장에서
일요일을 제외한 날마다 펼쳐져
주린 배 누구라도 채워갈 수 있어서
덩달아 여든 노인의 가슴도
남산만큼 커져가고 있다.
= 어르신은 15년 넘는 세월동안 하남시에서 '무료급식소'를 꾸려나가시고 계신다.
물론 외부의 도움 한 푼 없이 자비로 충당하고 계신다.
광주시에 시작할 때는 할머니와 트러블이 있어 몇 개월 동안을 집밖에서
생활을 하셨다. 이제는 아들놈이 장가를 가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야 하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드시는 약 봉지를 들고서 떠나셨다.
아직도 약주를 드시면 젊은이 못지 않은 호탕한 목소리를 토해내는
그 노인의 아름다운 삶은 이 땅에 살고있는 뭇사람들의 교감이리라.
그것도 부족하여 지친 육신을 이끌고 내년부터는 다른 도시들로 들불같이
번져간다니 미쳐도 이렇게 아름답게 미칠 수 있다면.......=
/ 2003년 12월 13일 아담
[참고]
이 글은 2003년에 쓴 글이며 무료급식소가 있던 자리에는 '하남시 문예회관'이 들어 서고
지금은 일반 건물 지하로 옮겼다. 그리고 광주, 용인, 안성에 있는 급식소는 철수를 했다고 한다.
노란 병아리 모양을 하고 있던 버스'무료진료차량'은
자유공간 회원이지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랑으로님'께서 무료로 운영하던 진료버스 였다.
자유공간회원인 아담이는 그 곳에서 약 3년 간 밥짖고 반찬 만드는 짓을 했었다.
내 인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날이라고, 지상에 내려온 천사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아직도 나는 허물어지지 않고 근근이 삶을 버텨내고 있다고....
다시 한 번 그렇게 무모한(?)삶을 살아 낼 수 있다면....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너무 게을러져 버렸다.
다만 내자신을 다시 추스려야할 때, 내 자신을 씻어내야할 때가 온다면
나는 기꺼이 유수봉할아버지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헝클어진 내 영혼을 씻어내 달라고......